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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옛말의 덫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인데, 속담이나 언어 표현 속에 남아있는 것을 화석화라고 합니다. ‘언어의 화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말 중에 ‘하느님 맙소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때 ‘맙소사’라는 말은 다른 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보통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옛날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언어학자에게 이런 흔적은 흥미롭습니다. 어원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언어 변화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예를 보면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표현도 현대말로 바꾼다면 ‘빼지도 박지도’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런 말이 꽤 많습니다. 언어를 볼 때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휘 중에서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 속담에 남아있거나 비유적인 표현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석까지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화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포도청의 의미를 모릅니다. 포도당과 관련이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화석이 속담 속에 남은 것이죠. 속담은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수많은 화석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긴 표현인지 이해가 갈까요? 집 천장에 쥐가 있었다고 하면 아마도 기겁을 할 겁니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어 보았어야 ‘쥐 죽은 듯이’의 느낌도 살아납니다. 한편 지금은 없는 제도이거나 명칭이어도 비교적 익숙한 경우도 있습니다. 양반이 대표적입니다. 아직도 ‘이 양반 저 양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양반은 칭찬이 아니라는 겁니다. 변한 모습으로 화석이 되어있는 겁니다. 그만하면 양반이다는 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옛말이 아직도 그때의 모습처럼, 또는 그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듯이 사용되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원의 탐구라면 옛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여행이라 하겠으나 어휘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를 이야기할 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아래고, 나머지 사람의 위에 있다는 의미이니 지금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상하관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검사를 영감이라고 하거나 대통령의 부인을 국모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모, 반역죄라는 말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왕정의 시대로 회귀한 느낌입니다.   대노나 진노와 같은 표현은 이해가 안 되는 바가 아니나 요즘에 맞지 않는 말들입니다. 사극의 말투를 현실에서 사용한다면 유머가 아닌 이상 문제가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유머도 웃겨야 한다는 전제는 있지만 말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이리 오너라~’라고 표현하면 웃길 수 있겠습니다. 만약 농담이라면 ‘통촉해 주십시오.’도 재미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옛말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언어가 화석화되는 이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석은 연구의 대상일 때 재미있습니다. 화석을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언어처럼 사용하면 과거의 덫에 갇히게 됩니다. 언어만 과거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곧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도 옛날에 머무르게 됩니다. 저는 그 점이 두렵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으로 사고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언어의 화석 중에는 아름다운 화석도 있습니다. 좋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 말속에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어원 연구를 통해서 발견하고, 이를 현재의 언중(言衆)과 나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인 언어 화석은 화석 속에 남겨두고, 깨달음과 웃음을 주는 언어의 화석은 기쁘게 꺼내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화석을 탐구하는 즐거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옛말 언어 화석 언어 표현 언어 변화

2023-10-25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화석

화석은 흔적입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화석은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한편 화석은 달리 표현하자면 그 당시대로 굳은 모습입니다. 변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이지요. 화석의 이런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어느 쪽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태도는 긍정과 부정으로 나뉩니다.   언어에서도 그렇습니다. 언어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화석은 귀한 자료입니다. 옛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 화석은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흔적이 깊게 남아 있는 곳은 속담입니다. 속담의 기본 특성이 오랫동안 민중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기에 변화가 적습니다. 예전의 단어나 문법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속담을 보면 옛사람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에서 포도청이 무언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할 때 풍월이 무언지 모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할 때 오뉴월은 정확히 언제인가요? 그나마 이런 속담은 많이 알려진 것이라 의미 추측이 가능하지만 자주 듣지 못한 속담은 아예 의미가 미궁 속에 빠집니다. 포도청이나 풍월, 오뉴월은 아직 화석이라고까지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와 같은 속담은 문화를 한참 설명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속담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는 어떤가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어쩌면 속담 전체가 화석 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동권 선생의 ‘속담사전’을 보면 화석이 한 가득합니다. 고고학의 전시장이라고나 할까요?   ‘아니 땐 굴뚝’이라는 표현은 문법의 화석을 보여줍니다. 현대어라면 ‘안 땐’이나 ‘때지 않은’이라고 표현할 겁니다. ‘아닌 밤중’도 비슷합니다. ‘하나님 맙소사’라는 표현의 ‘맙소사’는 옛 흔적을 보여주는 문법 표현입니다. 현재라면 ‘마소서’라고 표현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 속에는 앞으로도 많은 표현이 화석으로 남게 될 겁니다.     한편 언어교육에서 사용하는 화석화라는 말은 오류가 굳어져서 고쳐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로 발음에서 화석화된 오류가 많이 나타납니다. 자주 틀리는 문법이나 어휘도 화석화의 근거가 될 겁니다. 그런데 달리 보면 왜 외국어를 배울 때 화석화가 일어날까요?   저는 화석화도 중요한 의사소통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화석화된 발음이나 문법으로 이야기했을 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을 겁니다. 발음을 고치려고 더 애를 썼겠지요. 하지만 화석화로 굳어졌다는 말은 그 자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언어교육에서 화석화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이루어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화석화라는 용어는 비유입니다. 비유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언어학과 언어교육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화석이라는 비유에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편견에서 벗어나서 어휘를 바라보는 것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 화석 어휘도 화석화 언어 화석 화석 자료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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